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 사르코지 (문단 편집) === [[1차 리비아 내전]] 개입 === 2011년 [[아랍의 봄]]으로 대규모 시위와 무장봉기로 내란 상태에 접어든 [[리비아]]에 [[프랑스군]]과 [[NATO]]군 개입을 주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.[[https://en.m.wikipedia.org/wiki/Op%C3%A9ration_Harmattan|참조]]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포함한 위협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을 배제하는게 이미 명백하게 불가능했음에도 사르코지 정권은 프랑스군을 동원해 리비아를 폭격하고 미군을 위시한 NATO군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결국 카다피 정권을 결딴냈다. 그 결과 테러리스트 단체 [[무슬림 형제단]] 계열 [[국가협의정부]]가 집권했고 이에 반발한 세속주의 세력과 내란을 벌이는 등 리비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. 2014년대 ISIL 창궐 사태 때도 이 대혼란에 힘입어 [[ISIL]]이 리비아 시르테를 점거하는 등 [[아랍의 봄]]과 [[유럽 난민 사태]]가 최악의 방향으로 악화되는데 혁혁하게 기여한 장본인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. 난민의 또다른 대규모 발생지인 [[시리아 내전]]이야 격화에 [[프랑수아 올랑드]] 정권의 책임이 더 커도 북아프리카가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수십만 백만에 육박하는 난민 행렬이 지중해를 건너 프랑스로 쏟아졌다. [[오디세이 새벽 작전]]을 두고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국가인 [[튀르키예]]와 프랑스의 가장 밀접한 우방 [[독일]]조차도 작전 개시에 반발하던걸 강행한게 사르코지 본인이니 이런 평가가 억울치는 않을듯. [[https://www.theguardian.com/world/2011/mar/24/turkey-france-clash-libya-campaign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